WINTV365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를 죽이면 효도일까 패륜일까?

명절마다 올라오는 크킹3 낚시글에서 볼법한 이 주제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아이스퀼로스가 오레스테이아(오레스테스 이야기)에서 다루었던 주제이다.
오레스테이아는 아가멤논, 코에포로이(제주祭酒를 바치는 여인들), 에우메니데스(자비로운 여신들) 로 이루어진 삼부작 비극으로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한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인 아들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대 지중해 세계의 명예와 수치 관념에서 아버지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범인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라는 것이었다.
오레스테스 역시 아무리 아버지의 복수라지만 어머니를 죽이는 것이 정말 옳은지 실행 직전까지 깊이 갈등한다.
그러나 이 복수는 아버지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폴론이 신탁으로 지시한 명령이기도 했고
오히려 아폴론은 복수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 경고하여 결국 오레스테스는 복수를 감행한다.
그리스인들은 살인을 하면 마법적인 오염miasma가 생겨나 접촉한 사람들도 오염되고 도시가 저주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살인범을 도시에서 추방하고 적절한 정화를 받을 때 까지 일절 접촉하지 않았지만
황송하게도 아폴론이 친히 새끼 돼지의 멱을 딴 피를 뿌려 살인의 오염으로부터 오레스테스를 정화해준다.
그러나 어머니를 죽이고 죄를 정화받은 것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는데
분노의 여신들인 에리뉘에스가 오레스테스를 벌하기 위해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리뉘에스는 올림포스 신보다 오래된 고대의 신으로 주로 친족을 살해한 범죄자를 벌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고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의 죄가 바로 그들이 벌하는 범죄에 해당한다.
아폴론은 오레스테스는 무죄이고, 제우스의 뜻도 그러하다고 그를 옹호하지만
아폴론은 커녕 제우스조차 무서운 고대의 신들을 멈춰세울 능력과 권리가 없다.
에리뉘에스는 친족 살해자를 벌한다는, 운명에게 할당받은 자신의 정당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아테네로 도망쳐 아테나 여신의 신전을 찾아 아테나의 조각상을 붙잡고 탄원한다.
아테나는 이 문제는 어떤 신이나 인간이 함부로 홀로 결정할 수 없는 엄중한 문제이기에
아테네 시민들의 법정에서 해결하자고 중재한다.
아폴론과 제우스가 에리뉘에스의 역할을 존중해야 하듯
탄원자의 보호는 에리뉘에스가 존중해야 할 제우스의 법도였기에
신전으로 피신한 오레스테스를 어찌할 방법이 없는 에리뉘에스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인다.
쟁점은 오레스테스의 살인을 '아버지의 복수'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혈족 살인'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오레스테스의 행위는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을 살해한 것보다 더 중대한 범죄인데
왜냐면 부부 사이는 혈족 관계가 아니지만 부모 자식간은 피로 이어진 혈족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죄로 판결나면 이제 부모들은 자식이 가하는 폭력에 고통받을 것이며
혈족 사이의 인륜도 무너진다는 것이 에리뉘에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아폴론은 오레스테스를 변호하는데
에리뉘에스의 주장은 제우스와 헤라가 보증하는 결혼 제도에 대한 모욕인데다가
이 사건은 그저 한 남자가 죽은 것이 아닌, 제우스가 왕홀을 내린 왕이 살해당했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며
자식이란 실은 아버지의 씨앗에서 태어나는 것이고, 어머니는 그저 그것을 기르는 밭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 피를 이어받은 아버지를 위한 복수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증거가 마더-리스하게 태어난 아테나라는 것이다.
마더-리스하게 태어난 아테나 역시 자신은 남성의 편이기에 오레스테스에게 투표한다 밝히고
만약 동률이 될 경우 오레스테스의 무죄라 선언하며 투표 항아리를 개봉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배심원들의 투표는 동률이다.
그리스 세계에서 대단한 권위를 가진 아폴론이나, 최고신 제우스의 뜻이 오레스테스의 무죄를 가르키고 있었고
아테네인들에게 아폴론보다 더 대단한 권위를 가진 아테나조차 오레스테스를 향한 노골적인 편향을 보여주고 있었는데도
오레스테스의 유죄에 표를 던진 아테네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투표는 동률이었음으로 사전에 설정한 아테나의 조건에 따라 오레스테스는 무죄로 해방된다.
재판에서 패배해 도시를 저주할거라고 길길히 날뛰는 에리뉘에스에게
아테나는 투표는 동률이었으므로 아테네는 그들을 무시한게 아니며
분노를 거두고 도시에 정착하면 아테네인들의 숭배로 명예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잘 구슬린다
에리뉘에스는 이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은 아테네에 정착한 새로운 신들의 신전으로 향하며 비극은 막을 내린다.
지금까지 보았듯 그리스 사회는 다신교 사회였기에 유대-기독교적 일신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선 부분들이 보이는데
그것은 제우스조차 다른 신의 정당한 영역을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명한 고전학자 Burkert(1985)는 다신교는 세계에 도덕과 질서를 부여하는데 있어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논평한 적이 있는데
이처럼 다양한 신들이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서란 신들에게 분배된 몫moirai을 지키는 방식으로 가능하며
신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해당할 때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제우스는 자신의 영역인 환대의 법칙이 위배될 때, 즉 거지와 손님, 탄원자들이 존중받지 못할 때 개입하는 식이다.
확실히 그리스의 신들은 도덕 일반을 설파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할당된 질서를 사람들이 잘 지키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물론 그리스가 다른 사회보다 특별히 더 비도덕적인 사회는 아니었는데
신들이 영역화한 질서와 도덕의 틈새를 시인들과 철학자들, 즉 인간들의 사상과 철학이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신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다른 신을 힘이나 권위로 찍어 누르지 못하고
제우스의 의지를 관철하는데도 인간이 세운 법정이라는 제도를 통한 설득이 필요했다.
심지어 아테네 배심원은 오레스테스가 유죄라는 것에 더 많은 표를 던졌는데(아테나의 표까지 합해 동률이었으므로)
법정의 수석 판사인 아테나의 권위로 오레스테스는 간신히 무죄를 획득할 수 있었다.
따지기 좋아하는 아테네인들에게 제우스와 아폴론, 아테나 여신이 뭐라 하든
자신들의 생각에 맞는건 맞는거고 아닌건 아니었고
여기서 단 한표라도 반대로 기울었으면 신조차 오레스테스를 구해줄 수 없었다.
이 오레스테이아의 표준적인 해석은 재판 제도의 설립에 대한 신화라는 것이다
작은 사회에서는 피를 피로 씻는 사적 복수가 용인될 수 있겠으나
어느정도 규모가 커지면 사적 복수는 끝없는 연쇄로 사회의 존속을 해칠 수 밖에 없기에
처벌은 신과 인간, 그리고 폴리스가 보증하는 법에 이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레스테스의 가문인 아트레우스 가문은 이전에도 형제끼리 죽이고 조카를 삶아 만든 요리를 동생에게 먹이고 딸을 산제물로 바치는 등
형제 부부 자식간에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는 가문이었지만
오레스테스의 훈훈한 효도를 마지막으로 가문에 흐르는 피의 저주는 종결된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이 증오의 연쇄를 끊어준 것은 것은 신도 사람도 아니고
제도와 법이었던 것이다.